2008년 7월 3일 목요일

달동네 옥수동의 한숨... "우리 속 아무도 몰라"

달동네 옥수동의 한숨... "우리 속 아무도 몰라"




달동네 옥수동의 한숨... "우리 속 아무도 몰라"
[르포] 질병마저 방치하는 사회를 고발한다
인권실천시민연대
▲ 가난한 사람은 질병도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 사진은 타워팰리스 옆의 판자촌 구룡마을의 모습
ⓒ 인권실천시민연대
시간은 멈춰 있었다.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대학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연극 의 제목처럼 밤이면 휘황찬란한 압구정동이 내려다보이는 곳, 그래서 더욱 가난을 떠올리기 힘든 이 곳.

1999년 4월, 99:1의 청약경쟁률을 거쳐 20층짜리 삼성아파트 11개 동에 1444세대가 입주한 옥수동 달동네 옥수 9구역은 이제 옛 모습을 떠올리기조차 힘든 곳이 돼버렸다. 그러나 현 시세로 5억이 넘는 32평 아파트 단지들을 뒤로하고 조금만 더 돌아 올라가면 금세 시간이 멈춰버린 딴 세상과 만난다.

두 뼘 남짓 되는 창문을 열면 좁은 골목 사이로 건넛집 창문 안이 들여다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서너 걸음만 떼면 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서울 속에서 떠나는 시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에선 희망이 비쳤는데

1994년 한석규와 최민식, 백윤식과 김용건, 김원희, 채시라 등 숱한 스타들을 배출하면서 부동의 시청률 1위를 달렸던 MBC 드라마 의 배경이 됐던 옥수동 달동네. 돈 때문에 무작정 '기회의 땅' 서울로 올라온 이들이 방 한 칸에서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었던 강북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옥수동은 여전히 가난한 이들이 꿈의 한 자락을 잡고 발버둥치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사기꾼 제비 김홍식(한석규)과 순박한 시골청년 박춘섭(최민식)의 삶을 그린 에서 주인공은 부도덕한 신분상승의 망상으로 끝내 인생의 파멸을 맞는다.

하지만 2006년 옥수동 달동네는 그런 주인공 같은 삶조차 남아있을 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그래도 TV 연속극에서는 곤고한 삶 속에서도 희망이 비치고 재미가 흘렀는데 오늘의 달동네 옥수동에서는 예전보다 더 깊어진 절망과 아픔이 읽히기 때문이다.

가정간호사 이영희(50)씨가 모는 소형 경차가 아슬아슬하게 골목길을 헤치고 지나가자 이씨를 먼저 발견한 마을사람들이 담벼락에 붙어 서서 손을 흔들어댄다. 마치 문명인을 처음 대하는 오지의 토착민들이 먼 데로부터 오는 손님을 맞는 듯한 주민들의 모습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길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날지도 짐작키 어려운 옥수동 달동네에서 주차장을 찾기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일이다. 따로 주차장이 없는 골목 한 켠의 청과상을 찾아 들어가 사정을 얘기하자 주인이 직접 나와 가게 앞에 주차를 하도록 도와준다. 지난 2002년 천주교 옥수동 성당에 생긴 가정 간호팀을 맡은 후로 하루에도 몇 번씩 골목을 누비고 다닌 덕을 보는 셈이다.

간호사 이씨가 방문한 곳은 사고로 부부가 모두 팔다리를 잃은 유남준(63), 이정례(61)씨 집. 대낮인데도 컴컴한 집은 이 간호사가 들어서자 그제서야 불을 밝힌다. 사고 정도가 심한 부인 이씨는 침대에서 고개만 들어 겨우 아는 체를 한다. 부인 병 수발에다 정신지체가 있는 아들 끼니까지 챙겨야 하는 유씨는 자신도 한쪽 다리가 없음에도 자기의 불편함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이 간호사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올 때서야 자신의 불편한 부위를 내민다. 이 간호사는 부부의 혈압과 맥박 등 기본적인 건강 상태 체크는 물론 소소한 생활 얘기에 민원(?)까지 듣는 해결사다. 유씨가 이 간호사의 방문을 더없이 반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료사각지대 메우는 가정간호... 방치된 가난과 질병

▲ 골목 끝, 대낮인데도 컴컴한 현관을 들어서자 방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 인권실천시민연대
이 간호사가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좁고 꼬불꼬불한 데다 경사조차 만만치 않아 걷기조차 힘든 길을 피해가야 하다보니 조금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일이 걸어서는 많은 환자들의 집을 다 방문하기 힘들 뿐 아니라 걷다가 지쳐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가게 주인이 뛰어나와 가게 앞에 주차한 이 간호사의 차 키를 능숙하게 받아든다.

"옥수동에서 운전 잘 하면 세상 어디 갖다놔도 베스트 드라이버일 거예요."

웃음을 문 이 간호사가 찾아 들어간 곳은 단칸방에서 홀로 사는 홍종주(72) 할아버지 집.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는 오늘은 오른쪽 팔에 통증을 호소했다. 집안에 화장실이 없어 경사진 골목 아랫길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오갈 때마다 오른팔에 의지하다시피 해 자연히 생긴 병이다. 얼마 전에는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한참을 혼자 앓아야 했다. 그때 이 간호사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할 뿐이다.

비가 올 때면 비가 새 들어오던 할아버지의 집은 얼마 전 말끔하게 새 단장을 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에 집을 손봐야 한다는 이 간호사의 주선으로 성당 봉사자들이 나와 낡은 곳을 뜯어고치고 도배까지 새로 해준 덕이다. 홍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새 이 간호사를 찾는 급한 전화가 왔다. 욕창을 심하게 앓는 할아버지가 있어 한시가 급하다는 것이다.

"욕창을 앓는 분들은 혼자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도 좋지 않고 돌볼 가족도 마땅치 않아 오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서둘러 왕진 가방을 챙겨들고 찾은 집에서는 현관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몇 가지 냄새가 뒤섞인 듯한 공기는 집에 심한 환자가 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예상 대로 할아버지는 엉덩이와 등, 옆구리, 팔 등에 살이 썩어 들어가는 심한 욕창을 안고 있었다.

"대개는 어쩔 줄 몰라 손을 못 쓰다가 심할 정도로 진행된 후에서야 연락을 해오는 경우가 많아요. 도움을 청할 줄도, 도움을 구할 방법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이 간호사의 얼굴에서는 짙은 안타까움이 묻어 났다. 이 간호사가 찾은 또 다른 곳은 척추압박골절로 누워서만 지내야하는 황미순(39)씨 집. 처음엔 외부인의 방문조차 꺼려 하던 황씨는 이제 이 간호사가 올 때만을 기다리는 팬이 돼버렸다.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30만원 남짓한 돈으로는 공과금 내기도 벅찬 황씨에게 수십 만원이 족히 드는 검사비에 수술비는 물론이고 봉사자까지 주선해주는 이 간호사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왜 진작 몰랐는지…."

종양 수술을 앞둔 황씨의 얼굴에서는 좀 더 빨리 이 간호사를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전해져왔다. 황씨처럼 저소득층의 경우 주위에 도움이 될 만한 제도가 있음에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대다수가 다양한 개인 사정으로 학업의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저학력이어서 정보를 얻는데 한계가 있는 데다 주위에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 아파도 홀로 삭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부실한 가사도우미 관리체계

▲ 가정간호사 이영희(가운데)씨가 옥수동 주민들을 방문해 건강을 살피고 있다.
ⓒ 인권실천시민연대
황씨에 대한 처치를 마치고 나와 한참을 걸어 시멘트로 아무렇게나 포장된 골목길을 헤집고 들어가자 서울 한가운데 이런 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좁은 골목을 맞닥뜨린다. 골목 끝, 대낮인데도 컴컴한 현관을 들어서자 방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방문을 살짝 열어 방문객을 맞은 소리의 주인공은 전민자(57)씨.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한 전씨는 혼자 화장실 가기도 힘든 상태다. 몸을 자주 움직일 수 없는 탓에 옆구리와 엉덩이 쪽에 생긴 욕창이 번지고 있었다.

"아유, 쯔쯔쯔."

상처를 보고 혀 차는 소리를 길게 내뱉은 이 간호사가 이내 소독약과 붕대 등을 꺼내들고는 누워있는 전씨에게 바짝 다가앉는다.

"얼마나 아팠을까?"
"다들 그런데요, 뭘."

9년 전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후로 혼자 살고 있는 전씨를 찾는 이라곤 이 간호사와 일주일에 3번씩 방문해 빨래와 청소를 해주고 가는 가사도우미가 전부다. 도우미라고 해야 잠깐잠깐 급한 일만 봐주고 가는 데다 그나마 수시로 사람이 바뀌어 정 붙일 새가 없다. 그래서 더욱 이 간호사의 방문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홀로 견뎌낸 고통을 알아주는 이라고는 이 간호사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맙기는 하지만…. 정책이 수시로 바뀌어서 어떨 때는 정신이 없어요."

가사도우미를 관리하는 곳이 구청에서 지역 자활센터 등으로 수시로 바뀌어 어떤 때는 주 2회, 다른 때는 주 3회씩 방문하는 등 혼선을 빚는 현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국가에서 하는 일인데도 이렇게 협동체계가 미비해서 어떻게 한데요."

누구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꿰고 있는 듯한 전씨의 말에 안타까운 건 이 간호사도 매한가지다. 상처 치료를 위한 기본적인 처방법과 약 등을 꼼꼼히 챙겨주는 이 간호사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무거워 보였다.

이 간호사의 몫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달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해결사'로 통한다. 혈압과 맥박 등 일상적인 건강 체크와 기본적인 처치는 물론 소소한 생활 얘기에 민원(?)까지 들어주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도 주위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이 눈에 띄면 숟가락을 놓고 먼저 치료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다.

이 간호사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는 자신이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국민으로서 어떤 권리를 갖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밝히고 "이중 삼중의 고통에 처해 있는 이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려는 시민사회와 국가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 사회의 의료제도가 촘촘한 그물망 같은 시스템을 갖추기까지는 가정간호사업과 같은 의료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모색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시민 사회단체들간의 보다 적극적인 네트워크 구축과 연계 활동이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사회단체간 네트워크 구축 시급

저소득층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시행 중인 가정간호사업은 기초생활수급권자를 비롯해 홀로 사는 노인, 거동이 불편한 재가환자, 만성·퇴행성 질환자, 정신질환자, 차상위 계층 등 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펼쳐진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60∼70대 노인들이다. 하지만 대상 환자들에 비해 이들을 돌봐야 할 방문간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자칫 재가(在家) 암환자와 치매 환자 등을 방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사회단체 등과 연계한 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다.

실제 가정간호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천안시만 보더라도 4명의 간호사와 보건직 공무원이 15개 동 지역에서 1인당 145가구를 대상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투약과 처리, 의료 교육 등을 비롯해 재활기구와 간호용품을 전달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국의 경우 의료서비스 다양화 차원에서 일반병원의 영리목적 가정간호 사업이 상당히 활성화돼 있지만, 이 간호사의 경우와 같이 천주교 단체 등 민간이 치료비를 지원해 저소득층을 무료로 치료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가정간호의 주 지원 대상이 가족은 물론 오히려 그 가족의 존재로 인해 국가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 환자들이라는 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현실과 허점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또한 가정간호사 대부분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10여 명의 환자들을 돌보러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업무 과중으로 인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 주말이나 휴일에도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아 가정간호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긴급의료구호권 등 의료보장체계 구축 절실

의료문제가 중산층과 준빈곤층을 완전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현실도 우리나라 의료 현실이 안고 있는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와 민간의 각종 통계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건으로 건강문제를 안고 있는 저소득층의 상당수가 의료비 부담이 과중해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실제 2002년 말 현재 경제적 어려움으로 건강보험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해 보험급여 지급이 정지된 이들이 139만 세대, 약 300만 명에 이르러 전체 국민의 6% 이상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현실은 갈수록 심화돼 지난 2005년 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료를 석 달 이상 연체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345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료 징수체계를 비롯해 의료 시스템을 현실에 맞도록 보완해 의료사각지대를 줄이는 정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갑자기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면서 동시에 가족 가운데 입원을 요하는 중증 질환을 앓는 이가 생기는 경우 빈곤은 쉬 빠져 나올 수 없는 굴레가 되고 만다. 따라서 이들 빈곤층에 대한 긴급의료구호가 긴급히 도입되어야 한다는 게 일선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제기된 것이 긴급의료구호권(바우처) 제도다. 이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가 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의 판단을 거쳐 긴급의료구호권(바우처)을 발행해 전국의 병의원에서 바우처를 이용해 진료를 받게 하고, 정부가 추후 상환하는 제도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공공의료기관 확대와 기능 강화가 가난한 이들의 의료문제 해결을 위한 주된 방향이 되어야 한다. 즉 도시형 보건소, 지방공사 의료원 등 다양한 형태의 공공 의료서비스 체계 구축을 통해 취약계층에 대한 진료기능을 강화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당해보지 않으면 우리 속 아무도 몰라요."

달동네에서 만난 한 주민의 말은 모든 정책에 앞서 관심과 이해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임을 들려주는 듯하다.
인권연대의 웹진 와 월간 2회분을 묶은 것입니다. 이 글을 쓴 서상덕 기자는 인권연대 운영위원과 가톨릭신문 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2006-07-20 19:11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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